수필반

내 작은 욕심

청하늘 2018. 11. 2. 14:19


  20 여년전 첫 발령 받은 곳이 단양 . 설레는 맘 , 들뜬 기분으로 상기되어서 간 곳이지만 그래도 처음 집을 떠나고 엄마를 떠나서 혼자 살게 된 것이다 . 그 때는 지금처럼 임용고사를 보고 교사로 임용되는 것이 아니라 졸업 연도에 따라 순서대로 발령이 났었다 . 어느과는 졸업과 동시에 교사로 임용되는 과도 있었고 어느과는 1 년 심하면 2-3 년을 임용대기 상태로 목빼고 있다가 순서대로 발령이 났었다 . 나도 졸업 1 년 반만 에 교사로 임용되는 발령장을 받고 충북에서 제일 오지인 단양으로 임지가 결정되어 흥분과 기대로 그곳에 간단한 짐을 싸갖고 혼자서 자치를 하러 가게 되었다 .

  집 떠난 다는 흥분과 그리고 나도 이제 직장인이 되었다는 설렘을 갖고 출근한 첫날 . 아이들보다도 내가 더 긴장되어 들어간 교실의 교탁엔 갈색 애벌레가 꿈틀거리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. 이놈들이 나를 시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여기서 물러서면 안 되지라는 생각에 꿈틀거리면서 기어가고 있는 그 놈을 덥석 집어서 얘들아 근데 나는 이런 거 안 좋아해 하면서 정면을 향해 획 던졌었다 . 그 때 교실에 울리던 괴성은 ...

  그렇게 시작한 새학교에서 만난 선배를 참 많이 좋아했었는데 요즘은 거의 잊고 지내다가 오늘  갑자기 생각이 나 저장되었던 전화번호를 이용해 통화를 하게 되었다 . 그 동안 내가 어찌 살았던가 그냥 이생각 저생각에 목소리 듣는데 벌써 목이 잠긴다 같은과 선배지만 학교다닐 때는 안면도 없다가 그곳에서 알게 되었고 지금으로 하면 새내기교사의 멘토로 그 선배를 따르고 , 선배의 조언을 들으면서 내 수업의 방향을 설정하면서 진행하였었다 . 무엇이든 낮설기만하던 그때 선배의 학생을 대하는 성실하고 자상한 모습은 나에게 많은 모범이 되고, 또 반성의 시간을 갖게 만들곤 하였었다. 그런데 몇 년의 시간이 지나 듣게 된 목소리가 오늘은 선생님이 아니라 언니라는 말이 자꾸 입안에서 맴돌게 한다 . 비록 겉으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 선배의 가름침을 생각하면 선배 언니라는 표현이 더 정감이 가는게 맞겠다.

  처음 단양에서 아이들과 수업해가면서 학생들 실험노트를 하나하나 검사해주는 선생님 모습을 보면서 과학선생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나도 그렇게 따라 했었다 . 그런데 그게 보통일이 아니었다 . 실험 할때마다 학생들이 정리한 보고서를 밑줄 그어가며 다 읽고는 잘된 부분은 표시하고 잘못되었다 싶은 곳은 내 나름의 생각을 첨부해서 한줄 두줄 아이들 노트에 정리를 해 주려면 수업 후 남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노트 검사에 할애 해야 했었다 . 그래도 학기초 실험 보고서와 학기말 , 학년말 보고서의 달라진 표현 내용을 보면 아이들이 1 년간 자란 모습이 눈에 보여서 흐뭇했었다 .

  그 재미에 다음 해에도 한 장짜리 보고서가 아닌 실험노트를 준비시켜 보고서를 작성시키고 , 난 열심히 검사하면서 잘된 점 , 잘못된 점 , 그리고 교실수업시간에 못다한 이야기까지   한줄씩 써 주다 보면 학생들과 더 친해지고 그리고 그들의 생각 변화를 읽을 수 있었고 , 그러다보면 아이들 생각의 성장까지를 지켜 볼 수 가 있어 내심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곤 그래 이래서 교사가 좋은것이야 하는 생각을 하곤했었다 .

  그런데 지금은 솔직히 그러지 못하고 있다 . 이것 저것 다른 업무가 늘어난다는 핑계에 실험을 하고 나면 보고서를 받긴 하는데 그게 노트가 아니고 A 4 용지이다 . 물론 검사할 때는 밑줄 그으며 나름으로 정리해 주고  한줄한줄 밑줄그어 달아주던 댓글 대신에 교실에서 전체에게 언급을 하고 있긴하다. 그래도 그 때처럼 1 년분의 보고서를 모아 주지는 못하고 있다 . 정말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. 그리고 이것이 내가 게을러 진 것인가 하고 반성도 한다.

 

  초심을 잃지 않고 유지한다는 것이 힘들다는 옛 어른들의 교훈이 아니더라도 내가 나를 지킨다는 것이 -직장생활을 하면서 습관의 굴레에 그냥 맡겨버리지 않고 처음의 다짐을 지켜나간다는 것이 세삼 얼마나 큰일인가 생각해본다 . 아이들 앞에서 나이 먹은 아줌마가 아니라 세상을 더 많이 지낸 넉넉한 어른으로 대접 받으며 내가 진행하는 수업시간에는 교과서속의 과학내용만이 아니고 세상을 현명하고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는 여유를 가르치고 싶다면 그건 내 욕심일까 . 비록 그게 욕심이라도 그런 욕심하나 갖고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노력하다보면 맑은 눈을하고 나를 쳐다보는 교실의 학생들에게 작은 빛 하나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.

 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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